남이 내 집에 들어와 집안을 회복불능 상태로 오염시키고 가족들을 무시하고 있는데 참는 집주인은 없다. 못 본 척 한다면 그는 주인이 아니라 종이나 노예다. 바로 주한미군과 한국의 이야기다. 도대체 이 나라의 주권은 누가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5월 발생한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에서 발생한 탄저균 배달사고다. 또 용산 미군기지의 지하수에서 허용기준치의 수백배에서 수천배에 이르는 벤젠 등 유류 오염물질이 검출됐다. 동두천의 미군기지 캠프 캐슬의 지하수에선 발암물질인 벤젠이 기준치를 268배나 초과해 검출되기도 했다.
지난해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미군반환기지 환경오염 현황 및 복원현황’과 ‘캠프캐슬 환경오염조사 및 위해성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토양오염과 지하수오염이 확인된 반환 24개기지의 면적은 2천833만9천948㎡이고 이중에 20만8천495㎡가 오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오염 부지 정화를 위해 2천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됐다. 정부는 오염된 미군기지의 토양복원비용으로 지난 2009년 이후 약 2천100억원(197억원 중 일부 미집행)을 사용했다고 한다. 25개 기지 중엔 경기도가 19곳으로 가장 많았다.
그런데 이는 불평등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나라의 주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환경정책기본법 제7조(오염원인자 책임원칙)를 보자. ‘자기의 행위 또는 사업 활동으로 환경오염 또는 환경훼손의 원인을 발생시킨 자는 그 오염·훼손을 방지하고 오염·훼손된 환경을 회복·복원할 책임을 지며, 환경오염 또는 환경훼손으로 인한 피해의 구제에 드는 비용을 부담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분명히 명시돼 있다. 또 SOFA 환경정보공유 및 접근절차 부속서엔 ‘반환되는 시설과 부지에 대하여는 미국측의 비용으로 미국 측이, 공여되는 시설과 부지에 대하여는 한국측의 비용으로 한국측이 SOFA와 관련합의서에 부합하게 치유조치를 계획하여 실시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를 우리 정부가 부담하고 있다. 이에 경기도의회가 더불어민주당 양근서(안산6) 의원이 낸 ‘경기도 주한미군기지 및 공여구역 환경사고 예방 및 관리 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SOFA 본협정과 각종 합의문에서 정한 환경 규정과 절차, 지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이를 조례로 체계화하고 지방정부에 권한과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기도의회가 정부나 국회보다 훨씬 낫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