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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기고] 세계적 테마파크가 어쩌다 세월호 치유 대책이 됐나

[기고] 세계적 테마파크가 어쩌다 세월호 치유 대책이 됐나

경기도·안산시 세월호 졸속 대책 '이대로는 안된다'

우스갯소리겠지만 세간에는 수해가 나면 담당 공무원들이 화장실에서 만세를 부른다는 얘기가 있다. 수해복구비로 눈 먼 돈이 떨어지기 때문이란다. 관료들의 세월호 참사 지원대책을 보면서 이 얘기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인재에 의한 대참극을 바로 눈 앞에서 목도하고 이를 수습하고 치유하고 재발을 막자고 세우는 대책의 실상이 재난적 상황과 다를 게 없다.

조급하게 끼워넣고, 짜깁기하듯 만들어 놓은 부실투성이에 마치 이번 기회를 이용해 한 건 해보자는 한탕주의식 심보가 읽혀지기도 한다. 어찌보면 해마다 일어나는 수해 대책을 세우듯 한가하고 태평스럽기까지 하다.

경기도와 안산시는 6·4지방선거가 한창이던 지난 5월 27일 중앙정부(안전행정부)에 세월호 참사 관련 지원정책으로 <아래>와 같이 901억원 규모의 7개 국비지원사업을 건의했다.

※ <국비 지원 관련 7개 세부사업>
①수도권 규제완화 특별지구 지정 ②세계적인 해외 테마파크(복합레저시설) 유치
③정신/건강 종합 힐링센터 건립(87억) ④안전체험테마파크 조성(200억)
⑤단원고 명문고 육성 및 마이스터고 활성화 지원(201억)
⑥글로벌 안전시범도시 구축(146억) ⑦철도건설사업 지하화 및 조기 착공(267)

각 사업별로야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한 눈에 보더라도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내용들이다. 상당수 국비지원 건의 정책이 관계 기관간 협의 및 시민적 의견 수렴 등 타당성 검토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선정됐다. 세월호 참사에 따른 치유 및 재발방지정책과는 별다른 연관성이 없는 사업을 끼워 넣는 등 증흑적이고 졸속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장 문제가 되는 사업은 ⑤명문고 육성 및 마이스터고 활성화 지원사업(201억)으로, 세부 사업계획을 보면 단원고는 공립 외국어고로 전환하고, 안산공고는 마이스터고로 지정한다는 것이다. 명문고라고 해서 당장은 눈에 보기 좋은 떡이고 빼먹기 좋은 곶감일지는 모르지만 황당하고 엉터리같은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자사고와 외고 등 특목고는 학벌주의와 교육 불평등을 조장한다는 사회적 우려와 폐해 때문에 비판을 많이 받고 있는 대표적인 교육정책이다. 이들 입시 명문고에 실패한 대다수 평범한 학생들을 패배주의자로 전락시키는 부작용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게다가 외국어고는 시·도 광역단위로, 마이스터고는 전국단위로 신입생을 모집할뿐만 아니라 공부잘하는 상위권 학생들에게만 입학기회가 주어지는 사실상의 특권학교이다. 세월호 참사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안산지역의 평범한 아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수 밖에 없는 학교들이다. 결국 일반고인 단원고를 외고로 전환하면 지역주민과 학생, 학부모들은 가까운 학교마저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고, 치유는커녕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으로 오히려 염장을 지르는 일이 될 것이 뻔하다.

세월호 무사귀환 기원 메모지 붙은 단원고
진도 세월호 참사 8일째인 23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의 2학년 교실에 희생자들의 위로와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비는 메모들이 붙어 있다.ⓒ사진공동취재단

테마파크 유치가 세월호 치유 대책?...전면 재검토 해야

세계적인 해외테마파크(복합레저시설)유치 사업을 건의한 것도 설익은 것이다. 이 사업은 안산시 상록구 사동 90블럭과 시화지구 쓰레기 매집장 등 주변 약 20만평에 2조원대의 파라마운트 영화테마파크를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파라마운트 무비테마파크 아시아 라이센스사인 미국의 EGE(East Gate Entertainment)사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특정 시장후보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안산시가 적지임을 밝혔을 뿐 안산시에 어떠한 공식적인 제안을 한 적도 없고 시책으로 추진된 사실이 없는데도 중앙정부 정책건의사업에 버젓이 포함돼 있다.

더욱이 사업부지로 거론되는 지역에서 강건너 불과 수백미터 거리도 안되는 화성시 송산그린시티에는 약 127만평에 약 5조원 규모의 유니버설스튜디오 코리아리조트(USKR)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어서 사업 타당성에 대한 기본적인 검토조차 되지 않은 아이디어에 불과하다.

이밖에도 수도권규제완화 특별지구로 지정해달라는 정책건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안산을 대학이나 기업 증설 등과 관련 수도권 규제를 받지 않도록 아예 수도권에서 빼달라는 것이어서 이것 역시 논란이 많은 사안이다.

정부와 경기도, 안산시 등은 세월호와 관련한 종합지원대책을 지금이라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경기도와 안산시가 건의한 7개 국비지원사업은 전면 철회하고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사회를 어떻게 사람과 생명이 존중받고 안전한 도시로 바꾸어 나갈 것인가,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시민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치유하며 실제 삶의 질을 개선 해 줄 것인가를 주제로 진지한 성찰과 각종 토론회, 피해지역 주민 및 소상공인 등 포커스그룹 인터뷰 등으로 새로운 정책대안을 발굴해야 한다.

양근서 경기도의원(새정치민주연합,안산)
양근서 경기도의원(새정치민주연합,안산)ⓒ제공 : 양근서 도의원

특히, 경기도와 안산시, 경기도교육청은 민관협력체계를 짜서 시민적 참여를 보장한 가운데 조직이기주의와 칸막이 행정을 탈피해야 한다. 상호 협력하는 융합행정으로 세월호 참사에 따른 통합적 지원대책과 정책을 개발해 중앙정부에 적극건의해야 한다. 예컨대, 단원고의 외고전환 정책건의의 경우 담당기관인 경기도교육청은 제쳐놓고 지방자치 행정기관들끼리 일처리를 하다 보니 어이없는 일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세월호 관련 종합적인 정책 비전은 결국 사람의 ‘생명’과 ‘안전 ’이 보장되는 도시여야 하며 침체된 사회를 어떻게 생명력이 넘치고 활력있는 도시로 전환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전제돼야 한다.

단원고 주변 주민들로 들은 말들 중 가장 가슴아픈 것은 “강남 아이들이었으면 그랬겠느냐”는 탄식이다. 오죽하면 이런 말을 할까 싶기도 하지만 이들의 절망과 상실감에 귀를 기울여서 공명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낙오자나 버림받고 소외받은 사람들이라는 열패감 등을 극복하고 당당한 시민으로 존중받고 보호받고 있다는 인식을 하도록 집중 지원해야 한다. 열악한 주거 및 가로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은 물론 시민들의 자주적인 생산 및 창조활동이 활성화되면서 지역의 경제․문화공동체가 회복되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