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경기도민 생명 위협하는 미군 탄저균 ‘반입’ 사고
그러나 우리 정부와 보수 언론의 행태를 보면 과연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조사가 시작도 되기 전에 이번 사고를 ‘배달 사고’로 명명하고 있는 점이 그렇다. 정부는 부실한 1차 조사 보고서를 지난달 말 ‘탄저균 배달사고 관련 미군오산기지 조사결과’라는 제목으로 이미 발표해 버렸다. 보수 언론도 진실을 파헤치기는 커녕 여론재판하듯 ‘배달 사고’로 프레임을 짜고 있다. 과연 배달사고일까?

#장면1:2014년 6월 5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시의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예방센터(CDC)가 운영하는 로이벌 캠퍼스 생물안전도(BSL)-3등급 실험실. 과학자들은 탄저균 샘플을 추출해 질량분석법에 의한 세균 종의 식별 속도 분석 작업에 들어간다. 샘플 추출 후 10분간의 화학적 처리를 거친 탄저균의 일부는 살균 접시에 옮겨지고 과학자들은 이 균의 활성화 여부를 24시간 동안 관찰한다. 하루 뒤 죽었을 것이라 판단된 남은 탄저균 샘플은 생물안전도(BSL)-2등급 실험실로 옮겨진다.
그로부터 8일후인 6월 13일. BSL-3 실험실에서 과학자들은 살균 접시에서 탄저균이 의외로 성장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죽었을 것으로 여겨졌던 탄저균은 살아서 증식하고 있었다. BSL-2실험실로 옮겨진 탄저균이 멸균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비상이 걸렸고,실험실은 폐쇄되고 미국 전역의 국가운영 실험실에 대한 조사작업과 재발방지대책이 수립된다. -미 질병관리예방센터의 ‘탄저균에 대한 잠재적 노출’ 조사 보고서(‘14.7.11)-
#장면2:2005년. 미 국방부는 일본의 캠프 자마로 죽은 균으로 판단한 탄저균 샘플을 배송한다. 유타주의 솔트레이크시 서남쪽에 위치한 미 육군의 생화학병기 실험소(Dugway Proving Ground)에서 낮은 수준의 살아있는 탄저균을 포함한 채 미국 본토와 해외 실험실로 선적돼 옮겨졌다.
그로부터 4년후인 2009년. 캠프 자바의 탄저균 샘플은 살아있는 지 여부도 확증이 안된 상태에서 파괴된다. 그리고 2015년 6월. 미 국방부는 이 실험실의 물품 목록에 탄저균은 남아 있지 않으며, 실험실 직원과 일반 일본인들에게는 아무런 위해가 없다고 발표한다.
-미 국방부 실험실 사고에 대한 브리핑(2015.7)-
#장면3:2015년 4월 29일. 또다시 미 육군의 생화학병기 실험소에서 보낸 탄저균 샘플이 주한미군 평택 오산미군기지에 민간 택배로 배달된다. 4주 후인 5월 27일 미국방부는 이 샘플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며 생균주 진위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무조건 폐기하고 실험실에서 작업했던 22명에 대한 치료에 들어간다. 28일 복지부산하 질병관리본부는 주한미군과의 합동조사라며 현장에 직원을 급파 역학조사에 나선다. 다음날인 29일 정부는 이 샘플이 주한미군이 주피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생물식별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훈련용으로 죽은 상태로 들여와 국내법에 신고나 허가 등 해당사항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질병관리본부에 사후 통지하였다는 내용의 조사결과를 발표한다. 물론 탄저균에 노출됐을지도 모르는 22명은 아무런 감염증상이 발견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탄저균 배달사고 관련 미군오산기지 조사결과(’15.5.29)-
장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거슬러 올라가면 미 질병관리예방센터 보고서만 보더라도 죽은줄로만 알았던 탄저균이 살아나 유출된 사고는 미국내에서만 10년 동안 4번이나 더 있었다. 지난해 4월부터 올해까지 1년 동안만 한국 외에도 일본, 영국, 호주, 캐나다, 이태리, 독일 등 7개 국가의 군부대 실험실과 자국의 20개주 1개 지역에서 모두 86개에 달하는 민간기업 연구소와 학술기관, 연방 실험실에서 오산미군기지와 같은 유형의 사고가 일어난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오산미군기지 탄저균 사고는 결코 낱개의 그림이 아니다. 각각의 장면은 공격용이든 방어용이든 최고의 살상력을 갖는 탄저균을 생물학무기로 개발하려는 미군의 연작중 한 작품, 즉 시퀀스로 읽혀져야 한다. 탄저균은 미국 본토와 해외에서 이미 100여차례 이상의 사고를 통해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는 불사신임을 실증한 죽음의 균이다. 미군이 이것도 모른 채 죽은 줄 알고 잘못 배달했다고 하는 답변은 충분히 합리적으로 의심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 정부와 국민은 이 사고에 미국측의 일방적 해명만 들었을 뿐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도 다가가지 못한 상태다. 따라서 정부나 보수언론이 이번 사고를 명명할 때는 최소한 확인된 사실에 기초하여 ‘반입 사고’나 ‘유출 사고’로 정하고 조사를 시작하는게 맞다. 이것은 국격의 문제이고 주권의 문제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역시 나몰라라하고 물러서 있을 일이 아니다. 경기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미군기지가 밀접해있는 지역이다. 탄저균 반입 사고는 경기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사건이다.
경기도는 한미 양국의 조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나아가 재발 방지를 위한 관련 법 정비와 불평등한 SOFA(주한미군주둔협정) 개정을 위해 도민 앞에서 당당하고 강력하게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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