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선마을과 ‘할머니 가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정주환경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흘러 다닌다. 대부분은 근거 없이 거리를 떠도는 헛소문들이지만, 삶의 고달픔과 지역의 역사성 등이 고스란히 묻어난 것들도 적지 않다.
한 때 안산시와 관련된 대표적인 민담은 “안 산다 안 산다 하면서도 결국 사는 곳이 안산”이라는 것이다. 우스갯소리일수도 있지만 좀 더 나은 곳으로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과 그냥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는 좌절감이 버무려진 자조적인 블랙유머(불길하고 우울한 유머)가 아닐 수 없다.
필자의 지역구인 단원구 와동에는 좀 더 불편한 유머가 있다. 아파트, 병원, 은행이 없는 ‘3무 마을’, 한 술 더 떠서 예식장과 뷔페가 없으니 ‘5무 마을’이라는 것이다. 최소한의 생활 편의를 제공하는 환경, 문화, 복지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점도 그렇고 사회경제적 환경도 매우 특별(?)한 곳이 바로 와동이다.
또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 노인 인구가 많다는 점이다. 와동 인구 4만7천여 명 중 6.1%인 2천8백여 명이 65세 이상 노인으로, 안산시 25개동 중 노인인구 비중이 가장 높고 그중에서도 할머니가 많은 곳이다. 아직 7%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고령화 사회 문턱에 와 있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할머니들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손수레나 유모차를 끌고 폐지나 빈병 등을 수집해 고물상에 내다파는 모습이 골목길의 일상화된 풍경이다.
이뿐이 아니다. 장애인 비중이 인구수 대비 5.1%로 1위, 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세대수 대비 4.6%로 1위, 저소득 한 부모가정이 세대수 대비 2%로 세 번째로 많은 곳이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구도심이다.
이런 와동이 요즘 생동감이 넘치고 점차 활력을 찾아가고 있다. 가진 것은 없지만 서로 정을 나누는 데에는 인색하지 않은 사람들이 마을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7평짜리 콘테이너 도서관인 ‘와리마루’ 에는 아이들에게 책읽기 자원봉사하려는 아줌마들이 조직되고, 무료 급식터, 저소득층 청소년쉼터, 친환경밥상공동체 식당 등 작은 지역공동체 운동들이 새싹을 티우고 있다.
더욱 반가운 일은 와동과 바로 이웃한 선부3동이 경기도 생활환경복지마을로 선정돼 주민들이 본격적인 마을 만들기에 나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이다. 폐지 줍는 할머니들을 중심으로 와선마을조합을 만들고 지역 내 재활용자원을 수집·판매하는 자원 순환형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마을조합과 지 역내 각종 봉사단체, 주민대표기구를 비롯해 작은 지역공동체 운동 조직들이 연대하고 네트워킹하며 새로운 희망을 쏘아올리고 있다.
어떤 면에서 와선마을의 폐지 줍는 할머니들은 ‘할머니 가설’이 딱 들어맞는 공동체 모델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가 손자들을 보살펴 줬기 때문에 인간이 원숭이보다 오래살고 번창할 수 있었다’는 이론처럼 와선마을의 할머니는 폐지를 주워 내다팔며 가족집단을 건사하고 마을의 재활용쓰레기는 죄다 수거하며 주거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마을청소부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이제는 젊은 자손들로부터 이들이 보살핌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희망의 다른 이름인 미래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오래된 미래’의 역설은 미래가 과거로부터 온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와동과 선부3동, 와선마을의 미래는 폐지 줍는 할머니들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양근서 경기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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