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박상훈 후마니타스사장이 면전에서 우리나라 정당은 ‘공기업’이나 다름없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속으로 뜨끔한 적이 있다. 기실 우리나라 정당의 운영원리를 보면 연간 1천억원대에 달하는 막대한 정당보조금을 받아 연명하면서 하는 일이라곤 1년 내내 선거동원만 하는 거대한 ‘선거 머신’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대선 패배 후에는 동료 의원들과 짬을 내 아웅산 수지를 만나러 미얀마를 방문한 적이 있다. 오랜 가택연금에서 해제돼 국회의원이 된 그녀는 제1야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이끌며 중국에 자국의 희토류 채굴권을 싼값에 매각하려는 군부에 맞서 한창 싸우고 있었다.
수도 양곤의 NLD당사는 100여 평 남짓한 허름한 3층 건물로 야전 상황실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에너지와 활력이 넘쳐났다. 교외에 있는 지구당을 방문하고는 당이 하는 3대 일에 깜짝 놀랐다. 첫째는 교육사업으로 제도권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모아 당 학교에서 무료로 가르치는 일을 담당했다. 통나무와 갈대잎을 엮어 세운 교실에서 하얀 와이셔츠 차림의 인텔리 청년당원이 100여 명의 청소년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던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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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우리식으로 보면 미소금융 등 마이크로 크레디트와 같은 서민금융이었다. 가난한 주민들에게 낮은 이자로 소액 생계자금 등을 대출해주는 일을 당에서 직접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산후 돌봄 서비스였는데 한시라도 빨리 몸을 추슬러 생업에 복귀해야만 하는 저소득층 가정의 주부와 여성들에게 당에서 인력을 보내 산후조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미얀마는 경제력, 민주주의, 관료시스템의 발전 수준 등 많은 차이가 있고, 정당정치의 관점에서도 NLD의 3대 당사업은 당에서 할 일이라기보다는 당에서 제도와 입법수단을 통해 (지방)정부가 행정의 몫으로 감당토록 하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이다.
그러나 국회의원 중심의 상층 엘리트정치의 과두화, 지역정치와 생활정치의 실종, ‘안철수 현상’의 반복·고착화 등 ‘한계 기업’의 위기에 직면한 민주당으로서는 서로 처한 환경이 다르다고만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보다 소득수준이 20배나 낮은 미얀마와 우리나라 제1야당의 모습은 정당이 국민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당의 운영원리 면에서는 NLD가 민주당보다 20배는 나을 수 있다. ‘쇼’였을망정 어제의 천막당사 없이 오늘의 박근혜 정부는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양근서 경기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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