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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시가 준설 추진 중인 임진강 일대.
휴전선 서부전선 쪽에는 임진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국토부는 이곳 마정지구와 사목지구, 거곡지구 등 강을 따라 14㎞ 정도 되는 구간을 준설하려고 합니다. 이유는 홍수 위험을 막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상당수 주민과 시민단체들은 이 사업을 '임진강판 4대강 사업'이라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준설작업으로 환경이 파괴되고 친환경 농산물을 짓고 있던 경작지를 잃게 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 간 큰 파주시…황당한 조작
파주시가 지난달 30일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준설을 찬성하는 주민 7천여 명이 탄원서를 경기도의회에 제출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과 달랐습니다. 양근서 경기도의원이 의회에 제출된 탄원서 첨부 자료를 확인했더니 서명자는 단 3백 명에 불과했습니다. 3백 명 자체도 의문투성이였습니다. 같은 사람 이름이 여러 번 등장하는가 하면 같은 사람으로 추정되는 비슷한 필체로 여러 명의 이름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준설을 반대하는 쪽 시민단체에서 명단을 일일이 확인했더니 심지어 '3년 전에 죽은 사람', '7년 전에 이사 간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 조작 전 사진(위)와 조작 후 사진(아래.도의회 도시환경위원장 사진 합성)
파주시는 보도자료와 함께 사진 한 장도 공개했습니다. 경기도의회 의장에게 도의회 도시환경위원장이 탄원서를 전달하는 내용의 사진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작이었습니다. 파주시 공무원의 얼굴에 도의회 도시환경위원장을 얼굴을 합성했던 겁니다. 의회 위원장이 의회 의장에게 탄원서를 제출하는 것처럼 꾸몄습니다.
■ “다 제가 지시한 일입니다”
보도자료 조작 사실이 언론에 공개된 지난 8일 오후 파주시청을 찾았습니다. 보도자료를 배포했던 담당과 사무실은 어수선했습니다. 50대 후반의 한 남성이 사무실을 나가려고 하는데 조작된 사진 원본에서 봤던 얼굴이었습니다. 막 대기발령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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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원서 서명자가 7천 명이라고 명시된 파주시 보도자료.
담당 과장은 모든 게 자기 잘못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진 조작에 대해서는 "홍보의 극대화라고 할까. 탄원서를 전달한 것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고 3백 명에 불과한, 그것도 엉터리인 서명자 명단에 대해서는 "7천여 명으로 잘못 알아들었다. 찬성 쪽 단체로부터 전달받은 탄원서를 도의회에 전달하고 보도자료로 만들고 부랴부랴 일을 처리하다 보니 확인을 못 했다"고 말했습니다. 공무원 생활 38년 째라는 담당 과장은 끝까지 "내가 한 일" "내가 책임질 일"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 담당자의 과욕? 실수?…“몸통은 따로 있다”
임진강 준설 사업은 찬반이 엇갈리는 사안입니다. 이런 쟁점에 대해 조작된 사진과 엉터리 탄원서를 홍보하는 보도자료가 뿌려졌습니다. 찬성 쪽 여론을 확산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담당 과장이 독단적으로 판단해 지시한 것일까요? 직업공무원 조직에서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지난 7일 오후 보도자료 조작이 처음 확인된 직후 준설 반대 시민대책위 사람들과 지역 기자들이 파주시청에 가서 시청 담당과장 등과 면담을 했습니다. 시민대책위가 정리한 당시 대화 내용을 일부 소개합니다. (답변한 공무원은 담당 과장과 팀장 2명입니다)
대책위 : 그런 보도자료를 왜 만드신 거예요?
공무원 : 워낙 강력하게 요구하다 보니까, 저희 입장에서는…
대책위 : 7,000명이 없다면, 허위로 밝혀진다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공무원 : 일부 제가 확인했으니까…
대책위 : 전체 다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공무원 : (대답 안 함)
대책위 : 그 숫자가 7,000명이라는 거 어떻게 확인하셨어요?
공무원 : 거기서 주장한 내용을 그대로 받아 적은 거에요.
공무원 : 7,000명이라는 얘기는 들었는데, 저희가 확인은 못 했어요.
지역 기자 : 보도자료 낼 때는 시장한테 보고 하죠?
공무원 : 보도자료는 담당 과장이 결재하는 거지 시장님한테 결재는 안 받고.
지역 기자 : 임진강 준설 사업이 파주시 중요 현안 중의 하나인데 시장님이 이런 보도자료가 나가는 것을 알아야 당연한 거 아닌가요?
공무원 : (대답 안 함)
대책위 : 7,000명으로 조작하라는 지시를 받은 거 아니에요?
공무원 : 아닙니다. 제가 잘못 들었을 뿐입니다.
대책위 : (탄원서 제출하러 도의회에) 같이 간 사람은 누군가요.
공무원 :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공무원 : 다시 저희가 (보도자료를) 정정을 하는 걸로 할게요.
대책위 : 이 정도 사안은 정정보도와 사과로 끝날 성격이 아녜요. 왜 이 엄청난 걸 혼자 뒤집어쓰려고 하세요. 감옥에 갈 수도 있는 건데, 혼자 뒤집어쓰지 마시고 같이 간 주민이 누군지 이야기하세요.
공무원 :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준설 반대 시민대책위 쪽에서는 보도자료 조작의 몸통은 따로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파주시장은 물론 준설 사업을 추진하는 정부부처나 사업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개발업체까지 연루됐을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시민대책위는 기자회견을 열고 보도자료 조작과 관련해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감사원 감사를 통해 몸통이 밝혀질지, 밝혀진다면 과연 어디까지일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댓글이나 허위 사실로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일종의 '유행'처럼 '확신'으로 자리 잡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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