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역사가 김문수의 자판기인가?
우리 민족의 역사가 왜 왜곡됐느냐? 여러 답이 나오겠지만 단재 신채호 선생은 딱 잘라 말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들에 의해서다.” 왜적이 침범하거나 내란이 일어나 역사책을 불태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역사를 기록하는 사가에 의해서라는 얘기다.
오늘날 단재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필경 ‘정치인’이라는 답이 나올 게 자명하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경기도 현대사’ 논란을 보면 역사가 어떻게 그릇된 정치에 이용되고 왜곡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김 지사는 이 책을 만든 이유로 우리나라 국사가 잘못돼 있어 경기도 공무원 교과서를 따로 쓰고 출간한 것이라고 했다. 역사에 대한 인식수준이 왜 이리 경망스러운지 안타깝고 실망스러울 뿐이다. 상식으로만 생각해도 수많은 자치단체장이 역사책이 맘에 안 든다고 각자 공무원용 교재를 따로 만들어 교육한다고 가정해 보자. 박원순 서울시장, 최문순 강원도지사, 홍준표 경남지사, 강운태 광주시장에 이어 심지어는 기초자치단체장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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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사실의 나열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사실을 관계망으로 엮는 이해나 관념체계로서의 사관(史觀)이 존재하고 이로 인해 시대나 사람에 따라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기 마련이다. 그의 말대로 한 개인이나 몇몇 집단이 모두 완벽한 역사를 기술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역사는 때론 격렬하게 논쟁하고 토론하면서 정사(正使)를 만들어 가는 역사연구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학술영역에 속하며 해당 분야 학자들의 몫이다. 김 지사 같은 행정가나 정치인이 나서면 불행한 역사가 일어난다. 편향된 역사인식 바로잡겠다는 의도 자체도 위험하지만, 설사 교재로 사용하더라도 그 목적은 절대로 달성할 수 없다. 공무원들이 무슨 바보라고 김문수표 자판기에서 나온 사관을 덥석 받아들이겠는가. 입이 있어도 말 못하는 공무원들 더 이상 불편하게 하지 말고 내 사관을 다른 사람에게 주입시켜야겠다는 전제주의적 발상부터 포기해야 한다.
‘경기도 현대사’는 정통 역사학자도 아닌 우편향의 경제학자가 집필했고 이미 사실 관계의 왜곡까지 드러난 마당이다. 김 지사는 잘못된 곳은 고쳐서 쓰겠다고 하지만 소가 웃을 일이다. 오류와 왜곡으로 점철된 역사책이 그의 가난했던 시절 마구 기워 신어도 되는 헌 양말은 아니지 않은가. 제발 김 지사가 역사의 무게에 겸손해지길 기도한다.
양 근 서 경기도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