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송파 세모녀와 안산의 모자
[기고] 송파 세모녀와 안산의 모자
때로는 현상에 본질이 가려지는 경우가 있다. 대개는 사건의 이야기 구조가 너무 자극적인 경우가 그러한데 얼마전 안산의 모자 사건도 여기에 해당된다. 정신지체 10대 아들 옆에서 50대 모친이 거의 백골 상태로 발견됐다는 뉴스는 참혹했을 방 안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몹시도 찜찜하고 불편하게 했다. 그러나 눈을 돌린다고 이 자리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
50대 초반의 모친과 스무살의 아들은 지난해 9월에 안산으로 이사를 왔다. 이전 주소지를 보면 한 곳에 오래 정착하지 않고 구름처럼 흘러 들어온 것이었다.
다가구주택에 둥지를 튼 모자는 이후 방안에만 칩거했다. 전기사용은 매달 기본요금에 불과했고, 수도요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여져졌는지 다가구주택의 나머지 세대들이 분담했다. 이웃주민들은 모자가 이사올 때의 모습만 기억하지 그 이후론 아무런 관계나 교류를 한 적이 없다.
서류상 미혼모인 어머니는 의료보험기록상 최근 몇 년 동안 취업한 흔적이 없고, 아들도 중학교 중퇴 이후 사회진출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기초수급자 등 제도화 된 사회복지 혜택은 전혀 받고 있지 않았다. 언론은 아들이 정신지체아라고 보도했지만 정확한 사실은 아니다.
심한 영양실조 증세는 있지만 정신질환 병력은 없고 다만 비정상적 상황에 자신과 어머니를 그대로 방치했던 점으로 미루어 추측할 따름이다. 모자는 세상과 높은 담을 쌓은 채 스스로를 이웃과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사인은 부검을 통해서도 밝혀지지 않았다. 병 탓인지 아니면 굶어서 죽은 건지 모른다. 아들의 행동은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장성한 스무살 청년이 어머니 주검을 수습하지 않은 채 아사직전까지 함께 누워 지냈다. 모자의 최근 삶의 흔적 어디에도 악착같이 살아보려고 희구했던 모습은 잘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지난 삶이야 신산스럽기가 얼마나 오죽했을까? 한국사회에서 미혼모로 자식을 건사하며 20년 동안 살아왔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삶의 갈구이자 생명력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버티며 고개를 넘고 또 넘어 왔는데 결국은 지쳐서 취업도, 이웃과 관계도, 사회복지서비스도 포기한 채 고독사를 선택한 것은 아닐까?.
지난해는 생활고에 시달리던 서울 송파구의 세모녀가 자살했다. 이 사건으로 사회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지난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 법에 의하면 누구든지 장애, 질병, 빈곤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 인하여 사회보장급여를 필요로 하는 지원대상자를 발견했을 때에는 신고해야 한다. 행정동의 하부조직인 통장 등에게는 신고의무가 부여됐다.
그러나 이 법률도 안산 모자의 비극을 막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제는 이웃도 신고대상에 포함시켜야 할 만큼 우리 사회가 개별화 파편화됐다는 서글픈 역설만 반증했다. 자발적인 복지 포기자가 속출하고 자살률이 OECD 국가중 1위, 세계 3위인 현실에서 복지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서는 통장 등에게 신고의무를 지우는 것만으로는 택도 없는 일이다.
어떤 순간에도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기회를 보장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근본적 현실이다. 하지만 당장은 동사무소의 기능을 복지서비스센터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대대적인 행정조직 및 인사혁신으로 공무원을 현장 사회복지서비스로 집중시켜야 한다.
지치다 지친 가족들이 이웃과 사회에 도움을 청하는 것도 포기한 채 외롭게 죽어가는, 가장 절망스런 사회가 되기 전에 말이다.
양근서 도의원(새정치민주연합ㆍ안산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