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제주자치경찰과 지방분권 개헌 사기극
<경기시론> 제주자치경찰과 지방분권 개헌 사기극
올 한해 충격적인 경험 중 하나를 꼽으라면 제주자치경찰단의 일이다. 동료의원들과 분권형 개헌안을 준비하기 위해 제주를 방문했을 때의 황망함과 배신감 같은 걸 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 자치분권 모델로 알려진 그곳에서 정반대의 실상을 봐 버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제주자치경찰은 자치분권의 상징처럼 묘사되고 인식돼 왔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 우리 같은 지방의원과 지방분권세력들 머릿속에도 제주자치경찰은 자치분권과 자치경찰제의 모범으로 머릿속에 그려져 왔던게 현실이었다. 그러나 모든 게 허상이었고, 조금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지방분권 사기극을 보는 느낌이었다.
제주자치경찰은 지난 2006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와 함께 출범했다. 새해 들면 10년의 짧지 않은 역사이지만 제주자치경찰은 ‘자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무늬만 자치경찰인 것에 놀랐다.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치안주체가 아니라 치안보조 수준의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범죄 예방과 진압, 범죄 수사권은 없고(이제 본연의 경찰 권한일진데 국가경찰에게만 있다), 생활안전 범주 내 순찰활동과 주민 참여 방범활동에만 권한이 국한돼 있는, 말 그대로 치안 보조 역할이다.
구체적인 권한과 역할을 보면 지역축제 등 행사 때 질서 유지나 교통 관리하는 일부터 교통범칙금 부과 등 기초단속 권한만 행사할 수 있다. 음주측정권은 있지만 조사권은 없고, 제복입은 기마경찰대가 관광 안내하는 수준이다. 이밖에 환경, 산림분야 특사경 역할도 있지만 행정직 공무원에게 주어지는 권한과 다를 바가 없다.
권한은 국가경찰이 다 갖고 무늬만 자치경찰이 상존하다보니 제주도의 치안종합성과는 전국 하위권이다. 이쯤 되면 동네에서 자원봉사하는 민간 자율방범대를 경찰이 직영하는 수준과 뭐가 다를까 하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제주자치경찰제의 허와 실을 제대로 알려달라는 제주자치경찰단장의 호소가 아직도 생생하다.
새해는 지방분권 개헌의 해이다. 대통령부터 거의 모든 정치인과 관료들이 연방제 수준의 강력한 분권형 개헌을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제주자치경찰제의 진실을 알고 나면 과연 말대로 제대로 될까라는 강한 의문과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모두가 외치지만 현실은 분단이 고착화돼 온 것처럼 자치분권형 개헌 역시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사실 지방분권에 대한 이해관계는 진보와 보수 같은 이념이나 정당, 여야 위치에 따라 특정되지 않는다. 중앙집권으로 특권을 누리는 국회의원과 중앙정부 관료 등이 모두 중앙집권세력이고 반지방분권 세력들이다. 겉으로는 지방분권을 주장하지만 속내는 권력과 권한을 지방에 내줄 생각이 별로 없어 시늉만 하는 것이다. 이들의 실체는 지방분권 개헌안 각론으로 들어가 권한 다툼이 일어날 때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반면 가장 강력한 지방분권세력은 국민이다. ‘파사현정(破邪顯正)’과 ‘제구포신(除舊布新)’.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어 바른 것을 드러내고,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 교수신문이 뽑은 올해와 새해의 사자성어이다. 두 해 연속 ‘변화’가 키워드로 올해는 적폐청산, 새해는 개헌이 시대적 과제임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촛불 민심이기도 하다.
변화를 갈망하며 깨어있는 국민들 앞에서 더 이상 자치분권 개헌 사기극은 통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분권형 개헌만이 해답이다. 국민들은 여전히 촛불을 끄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양근서 경기도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