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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정치의 발견-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정치인에게 필요한 윤리와 이성은 무엇일까. 후마니타스 박상훈사장이 주로 진보적 정치지망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내용을 모아 엮은 것인데, 부제처럼 정치를 하고 있거나 또는 하려는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 박상훈이 고려대에서 최장집 교수에게 사사하고 정당정치를 연구한터라 가끔은 그의 스승인 최장집을 읽고 있다는 느낌도 줄 수 있다.
  

이 책은 기존의 정치관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동안 풀리지 않는 매듭처럼 답답하기만 했던 정치 현실을 보는 눈도 많이 교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주로 막스베버의 정치론을 소개하고 있는데, 아포리즘같이 강렬한 표현과 개념이 많아 읽는 내내 흥분감을 줄 것이다. 

 저자는 특히 진보적 정치가에게 매우 직설적이고 혹독한 비판을 서슴지 않고 있다. 정치가의 윤리적 책임 문제와 관련, 진보정치인은 "진보적이되 좀 더 정치적이고 좀 더 인간적이 되어야 한다"며 "저항의 정치학에는 익숙한 반면 통치의 정치학을 익히는 문제는 의식적으로 회피해 왔다"고 야단친다.
 
 그러면서 베버를 빌려 "정치가란 모든 폭력성에 잠재되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기꺼이 관계를 맺기로 한 사람이다" 고 주저없이 말한다. 왜냐하면 정치에서 잘못된 선택이 가져올 결과는 재난에 가까울 것이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신중한 판단을 중시하는 '책임윤리'가 의도의 선함만을 강조하는 '신념윤리'보다 정치에서는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밑줄친 구절들을 요약해 옮기면 이렇다.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감당하지 못할 사람이라면 "차라리 소박하고 순수하게 사람들간의 형제애를 도모하고 그저 자신의 일상적 업무에 충실한게 좋을 것"이다. 사랑의 윤리는 악에 대해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정치가에게는 거꾸로 '너는 악에 대해 폭력으로 저항해야 한다. 안 그러면 '너는 악의 만연에 책임이 있다'라는 계율이 더 타당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직업 정치가에게 중요한 문제는, 그가 어떤 자질을 통해 이 권력과 그것이 그에게 부과하는 책임감을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데 있다. 대의에 대한 헌신 없는 권력 정치가가 표면적으로 아무리 당당한 정치적 성공을 거둔다 해도 그 성공에는 피조물 특유의 공허함이라는 저주가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특별한 소명의식과 담대함을 갖는 정치가가 필요하고, 내적으로 무력하고 스스로에게 적절한 답을 줄 수 없는 자라면 정치라는 직업을 택하지 안는 것이 좋다.

 따라서 정치를 하려면 우선, 평균적인 인간적 한계의 기초위에서 정치적 실천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무지의 가능성에 대한 자각 내지 불확실성에 대한 존중이 왜 중요한지를 이해해야 한다. 여기에 정치란 위험한 분야이고 잘못된 결정이 파국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자각이 더해지면, 누구든 타인의 의견 내지 이견을 존중하는 자세를 갖지 않을 수 없고, 그런 자세는 자연스럽게 이념과 가치의 다원주의, 타인에 대한 인간적 정중함과 관용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적 이성을 갖게 한다. 인생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불확실성이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의사소통의 기술은 대단히 중요하다. 정치는 곧 '말'이지만 잘 듣는 것도 실력이다. 유권자를 동료 시민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만이 민주주의의 가치에 상응하는 정치가가 될 수 있다. 세상을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 그것의 법칙대로 일해야 한다. 갈등은 나쁜 것이고 배격해야 될 것이 아니다. 갈등은 자유롭고 개방된 사회의 본질적인 핵심이다.

 정치가가 할 일은,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그래서 사람들이 알고 싶고 참여하고 싶게 이끄는 '다리 놓기'를 하는 것이지, 대중의 무관심과 무지를 탓하며 스스로 민주적 가치를 버리는데 있지 않다. 분노보다는 이해해야 하고, 유머와 웃음이 있는 정치를 구사해야 한다. 인간적 한계에 대한 인식, 불확실성에 대한 존중, 틀릴 수 있다는 가정, 동료 시민에 대한 정중함 등의 가치를 중시하게 되면, 누구든 모두가 행복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즐겁고 보람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더욱 적극적인 동기를 갖게 된다. 반면 웃음이 없는 정치는 위험하다.